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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로 거울 앞에 선 데미 무어는 자신의 몸을 본다. 형광등 아래 고스란히 드러난 푸석푸석한 피부와 머리칼, 깊어진 주름, 늘어진 가슴이며 처진 엉덩이를 체념한 듯 쏘아본다. 장면을 바꿔, 데이트를 위해 한껏 차려입은 데미 무어가 거울 앞에 선다. 기대감과 약간의 흥분이 수증기처럼 거울에 어린다. 핑크색 글로스를 발랐던 입술을 지우고 새빨간 립스틱을 발라보고, 스카프로 목주름을 가려보고, 화장과 의상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지만 그래도 거울 속 자신은 최선이 아니다. 좌절한 그녀는 화장을 문질러 지우고, 어둠 속에 홀로 웅크려 앉은 채 집 밖으로 나가길 포기한다. 지난 1월 6일, 배우 데미 무어에게 골든 부천직장인밴드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서브스턴스’ 이야기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데미 무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톰보이 같은 쇼트커트에 풋풋하고 맑은 얼굴로 대중의 마음을 녹였던 ‘사랑과 영혼’의 몰리가? 정의롭고 대쪽 같아 톰 크루즈와 사사건건 부딪히던-또한 그 역시 외모 전성기였던 주택담보대출 연체 톰과 미모 대결을 펼쳤던-‘어 퓨 굿맨’의 갤러웨이 소령이? 더 이상 미모에 대한 찬사엔 아랑곳 않는다는 듯 삭발을 하고 거친 액션 연기를 선보이며 강인한 군인의 모습을 보여준 ‘G.I. 제인’의 제인이? 혹은 애쉬튼 커쳐와의 불운했던 결혼 생활 속 가십걸이? 50대의 나이에 7억을 들여 전신 성형을 했다는, 무성하던 소문의 주인공이?
직장인 신용대출 서류 젠 그 모든 이미지 위로 ‘서브스턴스’의 강렬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63살 데미 무어의 있는 그대로의 나신. 등이 갈라진 채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누운 망연한 두 눈. 기름진 프랑스 요리를 탐욕스럽게 만들고 또 먹어 치우는 뒤틀린 손가락. 이젠 더 이상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변형된 신체의 특수 분장을 뒤집어쓴 그 여자가. ‘이건 내 영화고 나는 뱅크샵 주인공이다’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듯한 그 뜨거운 열망이, 물 만난 고기처럼, 작두 탄 무당처럼 퍼덕이는 기세가, 그 어떤 젊음과 아름다움보다도 압도적으로 빛나는 그 쾌감이.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서브스턴스’로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데미 무어. 은행 적금 이자 비버리 힐즈/로이터 연합뉴스


연기 인생 45년 차, 톱스타로서 존재감을 과시해 온 데미 무어가 생애 처음으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고 나서 한 소감은 이렇다.
“45년 넘게 이 일을 했지만 배우로서 상을 받은 건 처음이네요. 30년 전에 한 프로듀서는 제게 팝콘 배우라고 말했고, 그때 저는 이런 상은 제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은, 제가 성공적인 영화를 찍고 많은 돈을 벌 수는 있지만, 배우로서 인정받을 수는 없다는 뜻으로 느껴졌어요. 이런 생각은 계속 저를 갉아먹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했다고 생각했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대담하고, 용감하며, 완전히 미친 ‘서브스턴스’의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그때 세계는 제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듯했죠. 코랄리 파르자 감독과 마거릿 퀄리, 30년 이상 저를 지지해 주신 모든 분들…특히 제가 스스로를 믿지 못할 때 저를 믿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팝콘 배우’라고 평가절하당했던 데미 무어는 등장 이래로 한 번도 일을 게을리한 적 없다. 생생한 젊음을 빛내던 1990년대에는 할리우드에서 남성 배우들과 같은 출연료를 받는 최초의 여성 배우가 되어 여성 배우들의 출연료를 올리는 데 선구자적 공을 세웠으며 제작에도 적극 참여했다. 포브스와 피플지가 선정한 박스오피스 톱 배우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순위 상위권에 늘 이름을 올렸고, 베니티 페어 커버에 만삭 누드 사진을 공개하면서 엄숙하거나 저속하거나 둘 중 하나로 취급됐던 여성 신체 이미지에 파열을 일으켰다. 전신성형설에 휩싸였을 때 ‘그러라 그래’라는 듯 태연자약했던 고고한 태도까지, 데미 무어의 몸은 늘 그 자신을 보여줬다. 그는 언제나 다작했고 스크린과 브라운관과 OTT를 자유롭게 누볐다.
그 자신은 한순간도 쉬지 않았으나 ‘서브스턴스’ 왕년의 스타 ‘엘리자베스 스파클’처럼 세상은 그를 잊기도 했다. 사실 데미 무어 자체가 엘리자베스 스파클이다. 그 모든 것은 나이가 든 여성 배우의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이가 들며 외모와 체중이 대대적으로 변화했는데 여전히 ‘커리어 하이’를 찍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는 달리,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기관리를 놓지 않는 여성 배우들에게 주어지는 건 다른 미래다. 그런데 데미 무어는 45년 차에 가장 환하게 타오른 것이다. 모두에게 보란 듯이, 그 어떤 젊은 신체보다도, 그 어떤 미모보다도 찬란하게.



영화 ‘서브스턴스’의 주역 데미 무어. 뉴 제공


새해를 맞기 싫었다. 한 살 더 먹기가 지독히도 싫었다. 모두가 카운트다운을 할 때 역으로 카운트다운을 했다. 꿈에선 자꾸 사회초년생 때로, 대학생 때로 돌아갔다. 루키즘, 에이지즘,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더는 이 세계의 주역이 아닌 기분, 그러니까…아주 뻔하고 본능적인 몸과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도 엄습했다.
그리고 미뤄뒀던 소문의 그 영화 ‘서브스턴스’를 보러 갔다. 데미 무어가 극 중에서 새로 탄생시킨, ‘새파란 나’인 마거릿 퀄리의 생생한 젊음이, 생동하는 육체가, 아찔한 미모가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어쩔 수 없다. 그러한 욕망은 인간의 DNA에 내장돼 있다. 그러나 그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데미 무어의 세월이었다. 자기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엘리자베스 스파클’로서 스크린에 등장한 데미 무어의 깊은 주름이, 흔들리는 눈빛이, 건조한 살결이, 립스틱을 마구 지워버리는 손길이, ‘자, 봐. 나는 늙었고 젊은 시절보다 아름답지 않아. 하지만 나는 건재해. 지금 나는 내 인생 그 어떤 순간보다도 더 빛나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그 모든 연기가, 그 뜨겁고 찬란한 자기 존재 증명이. 45년의 연기 경력, 63살의 나이, 그리고 타오르는 야심이 아니었다면 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여기서 비교군으로 가져와야 할 것은 마거릿 퀄리가 아닌 20대의 데미 무어다. 데미 무어도 한때 젊었다. 누구보다 생생한 육신을 지녔었고,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피플지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되었던 이마저 과거의 영광을 씁쓸하게 추억해야 한다면, 경력이 쌓일수록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평가절하되는 가치라면, 그 찰나의 가치가 누군가의 인생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겠는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데미 무어는 수상 소감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전하는 바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스스로 충분히 똑똑하지 않다고, 충분히 예쁘지 않다고, 충분히 날씬하지 않다고,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그냥 다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죠. 그런 순간에 한 여성이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은 앞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잣대를 내려놓는다면 당신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저는 이것을 제 온전함의 표시이자 저를 이끄는 사랑,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축하하는 선물로 삼고 싶습니다. 제가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영화 ‘서브스턴스’의 주역 데미 무어. 뉴 제공


생각해 보라. 인터넷 커뮤니티에 레파토리만 바꿔 숱하게 올라오는 ‘돈 없는 스무 살 되기 VS 100억 자산가 노인되기’ 같은 부질없는 게임만 봐도 알 수 있듯, 20대에도 60대에도 인간은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고 사랑을 할 수 있다. 결핍 혹은 노화 속에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스스로를 쏟아 넣고, 충만함을 느끼고, 그것이 진정한 나라고 느낀다면, 마침내 최선의 나를 만났다고 여기는 때가 오리라. 우리를 이끄는 건 나이나 외모가 아닌 사랑이다. 그 열렬한 사랑에 빠진 63살 데미 무어를 질투한다. 스스로 오랜 세월 공들여 만들어 낸 ‘데미 무어’라는 아이콘을 전복하고 해체하며 마침내 스스로 움켜쥔, 뜨거운 심장의 박동을 말이다.
그리하여 올해 나의 새해 목표는 한 살을 제대로 먹는 일. 40대의, 50대의, 그리고 80대의 찬란한 전성기를 생각하는 일. 마침내 백발이 되어 탈색 없이 핑크색으로 염색한 할머니가 된 나를 상상하는 일. 그러므로 두려워하거나 지치기엔 너무 이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은?

이예지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러운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지요. 이예지 디렉터가 <GQ>, <아레나>, <씨네21> 등 4개 매체를 거치며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면면 중에 가장 열렬히 질투했던 구석을 파고든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질투는 나의 힘'은 격주 수요일 낮 12시에 만날 수 있습니다.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


이예지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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